정정당당 있는 힘껏 말~달리자
한국 경마는 어떤 색깔일까. 경마 관계자들로서는 상당히 섭섭한 노릇이겠지만, 밝은 색깔이 아니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경마는 지난해 7조 6491억원의 매출액과 1628만명의 입장객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7%와 22%가 늘어나는 비약적인 성장세다. 외형적인 수치에서는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인 프로야구(연 관중 300만명, 입장수입 130억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그런데도 경마는 여전히 제 대접을 못 받고 있다. 돈을 걸고 요행을 노리는 사행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푸대접을 받고 있다.
승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씩의 판돈이 걸려 있는 경주에 전력을 다하지 않고도 태연자약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 바로 경마다.
프로스포츠는 승리를 위해 매순간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게 미덕이다. 승부를 피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상상도 할 수 없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쏟아 붓는 땀방울과 열정을 보며 팬들은 환호하고 열광하고 감동한다.
경마는 어떤가. 지금도 경마장에서는 ‘간다’ ‘안간다’는 말이 무수히 오가고 있다. 간다는 전력승부를 한다는 뜻이고, 안간다는 승부를 할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이를 마방의 전략쯤으로 용인해야 할까.
경주마들은 대개 4주마다 출전한다. 한달 만에 모습을 드러냈으면 많은 팬들을 위해 경주로에서 전력을 다해 최선의 승부를 연출해야 한다. 더욱이 경마경주는 승마레이스처럼 단순한 순위다툼이 아니다. 매 경주마다 천문학적인 돈이 걸려 있다.
열성적인 팬들은 경주결과를 알아맞히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노력은 승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의 ‘농간’에 의해 수시로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경마와는 다른, 나름의 확실한 팬층을 형성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경륜은 지난해 중반부터 전력질주 의무 위반 행위에 대해 페널티의 강도를 더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주행을 태만히 한 선수에게는 가차없이 경고가 날아들고 출장정지, 나아가 등급사정 때의 불이익과 같은 중징계를 내린다. 선수들은 채찍을 맞지 않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짜낼 수밖에 없다.반면 팬들은 경주의 질이 높아졌다며 만족감을 나타낸다.
경마는 경륜처럼 전력질주 태만행위(전능력 불발휘)에 대해 단호하게 제재를 가할 수 없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말이라는 생명체가 지닌 특수성 때문이다. ‘말(馬)이 말(言)을 듣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마방 관계자들의 행태다. 한 재결위원은 “능력 발휘 태만 행위를 조사하게 되면 말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는 통에 한계에 부닥친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경마는 언제까지 유쾌하지 않은 빛깔을 띠고 있을 것인가. 새해부터는 승부를 가려서 하는 풍토를 없애자. ‘간다’ ‘안간다’는 말이 사라지게 하자. 그래야 제 대접을 받는다.
노영필 기자 hope@daily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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