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 훼손으로 5년 넘게 논란을 빚어온 경북 경주시 손곡동과 물천리 일대 경마장 건설 예정 부지(약 29만평)에 건축등의 행위가 금지됨에 따라 경주 경마장 건설 계획이 백지화된다.
 새 정부 들어 경주경마장 건설에서 손을 떼는 수순을 밟아오던 마사회의 계획은 이번 발표로 인해 실질적인 종료를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건설포기에 대한 어떠한 반대 논리에도 떳떳한 '문화재 관리법'이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경주경마장의 백지화는 정부 정책조정 기능의 고장과 우격다짐의 경제논리가 부른 재앙이며, 정치논리에 의해 왜곡된 문화재 정책과 경마정책의 무모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대규모 개발사업이 치밀한 국토개발과 경마발전 계획에 터 잡지 않고 표심(票心)을 모으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된 과정부터 석연치 않다.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땅만 파면 유물이 쏟아져 나오는 천년 고도에 대규모 개발을 한다는 탁상 계획에 제동이 걸리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주에 경마장을 세우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였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후보는 득표를 위한 선거 공약으로 경주에 경마장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마사회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부지를 매입하고 문화재 시굴과 발굴작업을 시작했다. 97년까지 경마장건설을 완료하고 98년부터 경마를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공약(空約)이 되고 말았다.
갈길 바쁜 한국 경마의 발목을 잡고 있던 '경주'는 한국경마의 발전을 유보하던 공범이었다. 1996년 경마장 건설 계획이 발표되면서 지금까지 논란을 빚어왔고 이를 바로잡는 데 무려 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최종 결정을 5년이나 미룬 것은 비난 여론을 피해 보려는 계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의 잘못을 진솔하게 반성해 교훈을 얻겠다는 자세는 보이지 않고 예산 낭비와 정책 실패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박지원 장관 시절 경주 지역주민의 반발 무마를 위해 태권도공원을 대안으로 달래기에 나섰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현 정부도 경마 전문가들의 이의 제기를 외면하고 미봉책으로 일관하며 지역주민 눈치 보기에 급급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문제는 또 있다. 제2육성목장이 그것. 전북 익산시 금마면 갈산리 등 2개면 4개리 86만평의 부지에 육성목장을 건설키로 했던 마사회의 계획은 현재 성사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미 작년부터 경주와 마찬가지로 손을 떼는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 오영우 전임회장의 국회의원 출마를 위한 후보지 선정의혹을 받았던 '익산목장'은 그의 국회의원 후보 낙마와 함께 없었던 일이 되어가고 있다.
육성목장은 경마장에 경주마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야 했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트레이닝센터가 전무한 현실에서 내륙에 생기는 육성목장은 트레이닝센터를 겸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해야 한다는 기본전제가 무시된 마사회의 계획은 애당초 정치적 목적일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경마시설의 건설은 지리적 여건과 경주마의 생산 공급 등 1차 산업과의 연계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본질을 외면한 채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거나 지방의 재정확보만을 우선한다면 전체적인 경마를 구성하는 산업의 불균형을 심화시켜 결국은 경마존립의 근거 자체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경주에서만 부지 매입비 240억원, 진입도로 건설비 80억원,복구비용 80억원 등 400억원이 훨씬 넘는 막대한 마사회 예산이 낭비되었다.하지만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인력 및 예산의 낭비에 대한 책임 소재 규명과 관련 당사자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가 뒤따라야만 한다. 또다시 없던 일로 덮어두었다가는 이같은 과오가 되풀이되어 한국경마가 영원한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슬픈 역사를 기록할 것이기 때문이다.
2001/0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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