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서울 경마장 가는 길은 매우 혼잡하다．경마팬들은 주로 지하철 4호선을 이용,경마장역에 내린 뒤 5분 정도를 걸어 관람대에 들어서는데 이 사이를 통과하기가 쉽지않다．하루 수만명에 이르는 관람객이 오가는 길에 경마 예상지와 간단한 식음료를 파는 행상,수표를 바꿔주는 환전상,광고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까지 뒤엉켜 시장바닥을 지나는 느낌이 든다．
경마를 일컬어 레저스포츠라고 하지만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도박성이 강한 탓에 경마로 큰 돈을 날렸다는 사람도 적지않아 경마장 주변에는 늘 긴장이 감돈다．마권을 구입,베팅하는 사람들의 눈빛도 슬롯머신 앞에 앉은 것처럼 날카롭다．
경마장을 운영하는 마사회는 그동안 연간 매출액이 3조원을 넘는 사업과 연관돼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최근에는 그래도 덜한 편이지만 승부조작을 노린 폭력과 금품제공 등 불법행위에 기수 등 관계자들이 연루돼 마사회 이미지에 먹칠하는 사례가 잦았다．불과 수년전만 해도 퇴역장성들이 역대 마사회장직을 독차지하고 재정운영까지 불투명해 마사회 이익금의 상당부분은 정치자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몇 차례 제기됐었다．
지난 92년초 마사회 관장 부처가 농림수산부에서 체육청소년부로 이관될 당시 많은 농민단체와 국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정치권의 위세에 눌려 저지하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의 실세로 통하던 모 장관이 부처이관을 강력히 주도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조직폭력의 세계에서나 있음직한 힘의 논리가 정부 부처간의 관할권 다툼에서 그대로 적용돼 마사회를 빼앗겼다는 농림수산부 관계자들의 푸념까지 튀어나왔다．
지난 9년간 체육청소년부를 거쳐 문화체육부,문화관광부의 관장을 받아온 마사회가 새해에는 농림부로 다시 이관될 예정이다．여야 합의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마사회 이관이 포함된 것이다．농림부와 농민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만 문화관광부는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마사회 이관에는 체육청소년부로 옮길 때와는 정반대의 명분이 제시됐다．경마가 레저스포츠라는 점에서 문화관광부 산하에 둘 수도 있지만 이익금의 대부분을 축산진흥과 농민 지원을 위해 활용하므로 목적사업을 집행하는 농림부가 관장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여야가 모처럼 마사회 이관에 합의하게된 진짜 배경은 농민들의 환심을 얻어야 한다는 전략에 있는 것 같다．현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지켜야 할 입장이고 한나라당은 마사회 이관에 반대할 경우 농민들로부터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처지이기 때문이다．과거 정치권의 실세가 힘으로 이관한 마사회를 농민들이 최근 시위로 다시 돌려놓은 셈이다．
/김성기논설위원 kimsongk@kmib.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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