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마의 종주국은 영국이라고 할 수 있으나, 스포츠 및 대중 레저로 경마가 가장 번성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통계 수치로 보았을 때 마권매출에 있어서만 일본에 뒤져 2위를 기록하고 있을 뿐 경주마 생산의 경우 매년 약 3만5,000두의 서러브레드 자마를 생산하여 세계 최고의 경주마 생산국이고, 총경마상금이나 총경주수 출주두수 등의 측면에서도 미국은 세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지역에서는 ‘경마란 강한 말을 선발하기 위한 경기’라는 경마 본래의 의미에 충실하여 대부분의 주요경주가 잔디주로에서 개최되고, 장애물 경주가  여전히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주요 경주가 모래주로에서 행해지고 장애물 경주가 발달하지 않았고 경마팬과 마권발매를 중시하는 등 매우 대중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1960~70년대 이전 미국에서 합법적인 내기는 경마뿐이었다.
TV를 통한 스포츠 중계도 거의 없어서 미국의 대중들은 스포츠 겸 내기의 대상으로 경마 이외의 것을 가지지 못했다. 당연히 경마는 이 시대 최고의 관람 스포츠이자 내기산업으로 번성했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 각 주정부에서 세수증대를 목적으로 앞다투어 카지노를 비롯한 내기산업과 복권사업을 승인 도입하였고,이어 선상카지노와 인디언 갬블링까지 도입되면서 1990년대에 이르러 경마는 완전히 내기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1997년 미국의 합법적인 내기산업 총매출(6,386억달러:약 766조원)에서 경마가 차지하는 비율은 2.43%(155억달러:약 18조6,000억원)에 불과했다.
선상카지노가 18%,  인디언게임이 13%,  복권이 30%를 차지하고, 나머지 32% 정도를 일반 카지노가 차지하고 있다.

※선상카지노(Riverboat Casino) : 큰 강이나 호수에 유람선을 띄우고, 그 유람선에서 카지노를 운영
※인디언게임(Indian Gaming) : 레이건 행정부 때(1988년), 미국 인디언 부족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고자 도입한 ‘인디언 보호법’에 의해 인디언 부족들이 자신들의 자치지역 혹은 주정부의 승인을 얻을 경우 다른 지역에서도 운영하는 각종 내기 게임

스포츠의 측면에서도 경마는 TV를 통한 대중접근을 도외시해 많은 팬을 프로야구나 미식축구 등 인기 스포츠에 빼앗겼으며, 신규 팬 창출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몰락을 자초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경마가 90년대 들어서서 실패를 거듭한 가장 큰 이유로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 경마를 대중들에게 전달하지 못한 점’을 들고 있다.

이렇게 침체를 거듭하던 경마가 90년대 중반 이후 매출액과 경마상금이 소폭이나마 증가세로 돌아섰는데, 이는 전적으로 경마장간의 사이멀캐스팅(동시중계)에 기인한 것이다.

경마 미시행 기간 중에 다른 경마장의 경주를 중계방송하여 마권을 발매하는 사이멀캐스팅은 미국경마의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실제 경주(live racing)를 시행하는 경마장의 수와 총 경주 수, 한 경주당 평균 출주두수 및 본장(on-course)의 입장인원과 매출액은 줄어든 반면 장외매출과 경마상금은 소폭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때 유명 경마장으로 이름이 높던 일리노이주의 알링턴인터내셔널 경마장이 인근 경쟁산업과의 경쟁에서 뒤져 수년 동안 경마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반대로 켄터키주의 처칠다운스 경마장은 사이멀캐스팅을 잘 활용하여 오히려 사세를 확장시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된 경마장의 이합집산을 살펴보면, 처칠다운스 경마장은 미국 전역의 사이멀캐스팅 체제를 갖추기 위해 플로리다주의 캘더경마장(Calder Racecourse)을 8,600만달러에,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경마장인 할리우드파크(Hollyhood Park) 경마장을 2,300만달러에 사들였다.
이외에 켄터키주의 엘리스파크(Ellis Park)와 인디애나주의 후지어파크(Hoosier Park) 등을 매입했다.

할리우드파크와 함께 캘리포니아의 양대 경마장으로 손꼽히던 샌타애니타(Santa Anita) 경마장이 경영난으로 인해 캐나다의 자동차 부품업체 사장이자 경주마 마주 겸 생산자인 프랭크 스트로낙(Mr. Frank Stronach)에게 넘어갔으며, 그는 1999년 브리더스컵을 개최한 걸프스트림파크(Gulfstream Park)도 사들였다.
이러한 경마장의 이합집산에 따라 최근 미국의 경마장들은 처칠다운스, 프랭크 스트로낙, 그리고 기존 3개의 거대 시행체를 중심으로 운영되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경마 관계자들은 사이멀캐스팅을 통한 일시적인 매출액 경마상금의 증가가 미국경마의 내재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안이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생각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TV 등 대중매체를 통한 경주방송의 증대와 현대적 기법을 도입한 대대적인 광고로 대중에게 경마를 하나의 통합적인 스포츠로 인식시켜 경마팬의 저변을 확대하고, 한편으로는 PC나 전화를 통한 계좌투표 방식의 확대에 있었다.

이를 위해 미국의 경마인들이 설립한 것이 NTRA(북미서러브레드 경마협회)이다.
경주마 생산, 경매, 마권발매 등 각종 경마산업을 구성하는 요소들로부터 회비를 거두어 운영자금을 마련한 NTRA는 가장 먼저 TV를 통한 경주중계 시간확보와 대중매체를 통한 단일화된 경마의 홍보에 전력투구했다.

미국의 뿌리 깊은 분권주의적 성향 때문에 미국경마계의 전적인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고 회비징수에도 다소 곤란을 겪었지만, 1998년 4월에 발족한 NTRA의 1년6개월간의 활동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경마계의 통합적인 노력과는 별도로 발매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다.

PC나 케이블TV를 통한 경주의 중계와 이와 연계한 계좌투표도 그중 하나다.
미국경마계에서는 계좌투표(Account Wagering)를 통한 신규경마팬 확보와 마권매출 증대를 앞으로 경마의 미래를 좌우할 사활적 사업영역으로 보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You  Bet사는 가입자들에게 PC를 통해 경주 장면 및 각종 경마정보들을 제공하고 동시에 베팅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주목을 끌었다.
좀더 최근에는 TV Games Network라는 회사에서 3억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오리건(Oregon)주에 본부를 설치하고 경마경주만을 중계방송하는 케이블TV 채널을 만들었다.

지난해 7월 서비스를 개시한 이 케이블TV는 24시간 경주를 중계방송하고, 경주 중간중간에 경마 정보나 각종 부수적인 프로그램들을 제작하여 방송하며, 케이블TV 가입자들과는 계좌를 만들어 이를 통해 방송되는 경주에 대한 베팅과 환급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미국에서 법적으로 계좌투표가 가능한 22개주에서 110만명의 가입자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점차 그 가입자 수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PC와 케이블TV를 통한 경주중계, 또 계좌를 통한 베팅처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두 회사는 각각 PC와 케이블TV가 베팅을 매개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판단 하에 사업을 시작하여 수행하고 있으나, You Bet사 방식에 대한 경마고객들의 참여는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TV Games Network사의 방식이 NTRA의 지지를 받으면서 차세대의 새로운 경마마케팅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각종 미국경마 소식을 접하면서 느끼는 점을 종합할 때 향후 미국경마의 미래는 아래 3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NTRA가 미국경마계(경마시행체, 생산자, 마주, 경매회사 등)의 합의를 이끌어내어  얼마나 성공적으로 미국 대중의 관심을 다시 경마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인가?
▲ 케이블TV망을 이용하는 TV Games Network, The Racing Network 등과 PC를 매개로 하는 You Bet사 등으로 대표되는 계좌투표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신규고객을 창출하고 마권매출을 늘릴 수 있을 것인가?
▲ 90년대 중반 이후 카지노를 포함한 내기산업의 급격한  성장에 제동을 걸려고 하는 중앙정부 및 의회의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