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족의 기원신화에 “태양이 조그만 불덩어리에 불과할 때 언니와 동생이 중국에 와서 언니는 자연이 수려한 남방으로 시집을 가고 동생은 목초지인 북방으로 시집을 갔다.
언니는 손에 흙을 쥔 아이를 낳아서 해특사라 이름을 지었는데 이 아이가 중국인의 조상이 되었다.
동생은 손에 말총을 쥔 아이를 낳아 이름을 몽골락이라고 불렀는데 이 아이가 몽골인의 조상이다”라는 것과 같이 말과 인간이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는 곳이 몽골이다.
그래서 몽골말을 보기 위해 눈밭을 거닐어 보기로 하였다.

내가 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3년 5월 한국마사회 마필보건소 계장으로 입사 후부터다.
대학에서 말에 관한 이론은 배웠지만 실제로 말과 접촉을 한 것은 이때부터라 할 수 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 경주마의 혈액검사를 위해 채혈을 하는 도중에 ‘돌격왕’이라는 말에게 턱을 채어 며칠간 밥을 먹지 못하던 때도 있었으며, 말의 발굽에 밟혀 발가락이 빠지는 아픔도 있었다.

이렇게 말 공부를 시작한 나는 수의학과 관련된 학회 때마다 연구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고 자료도 모았다. 말 자료에 대해 자랑을 하다가 자료들을 잃기도 하였다.
빌려간 사람들이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나는 말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료들을 가지고 마문화라는 것을 공부하였다. 수의사가 자기영역도 아닌 엉뚱한 분야를 공부하자 이상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기에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이다.

마문화를 공부한 김에 뿌리를 뽑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몽골 마문화를 공부하기 위해서 개인돈을 들여서 몽골을 방문하였다.
주위에서는 “전문가도 아닌 네가 무엇을 얼마나 연구할 것인가”라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연구결과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한국마문화에 다소나마 이바지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특히 보고 싶었던 것은 설원에서 몽골말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고 있는가였다.
사료나 물을 주어야 하고 운동도 시켜야 하는 말들에게만 익숙하였기에 몽골말의 생활상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눈이 내리고 영하의 추위가 계속되는 시기를 맞춘 것이다.

몽골이 무척 멀리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운 나라로 인식되어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북한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걱정할 때 “지금부터 8백년 전에 마르코폴로는 이탈리아에서부터 말을 타고 몽골고원을 헤치고 다녔는데 오늘날은 비행기를 타고 바로 가는 곳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출발하기 전에 몽골 관계 서적 10여권 이상을 읽었다.

칭기즈칸의 나라

울란바토르에서는 해외여행객들이 다니는 공식적인 루트보다는 다소 외진 곳을 주로 찾았다. ‘겔’이 밀집한 지역이거나 몽골 서민들이 잘 다니는 식당이나 자유시장 혹은 가죽시장, 자동차 매매시장과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버흐(씨름)경기장, 그리고 교외로 나가서 유목민들의 주거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한 곳은 울란바토르에서 동남쪽으로 1백여㎞를 내려 온 트릴즈지역으로 정착유목민이 살고 있는 ‘겔’이었는데 정착유목민이라고 해도 10~20㎞ 떨어져서 겨우 겔 하나 있을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다른 한 지역은 울란바토르에서 남서지역으로 1백50여㎞ 떨어진 ‘투아이맥알탕보락크’라는 곳으로 전형적인 이동식 유목민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면서 그들의 부모들이 살고 있는 도시(겔에서 살고 있으나 판자로 울타리를 만들어서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서 큰 동네를 만들어 살고 있다)에 들러 음식 등을 대접받기도 하였다.

지금은 비록 글을 쓰고 경마평론을 하지만 나의 전공이 수의학이면서 그중에서도 마학을 주로 공부했기에 몽골농과대학의 수의학과와 몽골마사회 등을 방문하여 서로 의견교환을 하고 의문사항이나 각종자료들도 얻을 수 있었다.
몽골농과대학에서는 몽골말에 대해 공동연구를 해 줄 것을 제의받기도 하였으며, 몽골마사회에서는 새로이 건설코자 하는 현대식 몽골경마장을 위한 기술자문을 요구하기에 이에 응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몽골(Mon-gol)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중국이 과거 몽골을 비하해서 우매한 민족이란 뜻과 ‘골’의 ‘ㄹ’받침을 발음할 수 없으므로 ‘蒙古’라고 표현한 데서 그대로 따서 사용하다보니 ‘몽고’가 된 것이다.
내몽골은 현 중국의 북부지방인 내몽고자치구를 말하고, 청나라 때 외몽고라고 불렀던 곳은 현재의 몽골인민공화국을 일컫는다.
그외 서몽골이 있었다. 지금 중국의 위구르자치구와 카자흐스탄 등이었는데 현재는 과거 몽골의 문화만 일부 남아 있을 정도이며 몽골국과는 거리가 멀다. 즉 오늘날 몽골이라고 하면 외몽골, 곧 몽골인민공화국을 말한다.

몽골을 영토적인 의미에서 사용할 때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현재 몽골인민공화국에 국한하는 것, 다른 하나는 몽골인들이 살고 있는 전지역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북쪽으로는 바이칼호, 동쪽으로는 만주, 남쪽으로는 만리장성과 황하지역까지를 말하며 즉 내몽골 외몽골 그리고 서몽골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몽골은 우리의 역사에서 지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고려시대는 몽골이 우리나라를 1백여년간 지배함으로써 많은 문화재를 파괴하였고, 그들의 문화를 강제적으로 우리에게 심어 주었다.
백성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었고, 많은 우리의 여인네들을 몽골의 오지로 데려가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그들의 자녀를 퍼뜨리는데이용하였다.
몽골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웃이라기보다 침략자적 의미가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는 많은 몽골인들이 한국의 투자를 희망할 뿐더러 많은 몽골인들이 관광비자로 입국하여 그대로 주저앉아 불법취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과거의 관계가 뒤바뀌어 이제는 한국에서 몽골에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 현실은 역사적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울란바토르의 보양드오하 공항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서울에서 울란바토르행 비행기는 만석이 아닌데 울란바토르발 서울행은 항상 만석이라고 한다. 과거 풀을 찾아서 유랑하던 유목민들이 이제는 달러를 찾아서 세계 각지를 유랑하는 것으로 탈바꿈되었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