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대표적인 경마선진국으로 현대경마의 종주국이다.
경마시행 규모면에서 미국이나 호주에 뒤지고, 마권매출 면에서도 일본과 미국에 뒤지지만 여전히 영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마를 시행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영국의 경마시행구조는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매우 특이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의 주요 경마시행국들에는 독점적인 경마시행체가 있어, 이들이 경마시행 마권발매 면허 및 심판업무 경마장 운영을 비롯하여 각종 행정업무를 모두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경마시행구조는 상당히 복잡하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경마 관련 기관으로 자키클럽(The Jockey Club)이 있다.
자키클럽은 오래전 국왕의 칙령에 근거하여 설립된 멤버제 법인으로서 오랫동안 경마통할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자키클럽의 주요 역할은 영국 내 경마시행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경마법규 위반자에 대한 제재 결정, 마주 조교사 기수의 면허와 등록업무, 경마시행규정의 개폐, 영국에 있는 59개 경마장에 대한 경마개최 면허 교부, 각 경마장에 재결위원 파견 등이 자키클럽의 역할이다.
자키클럽은 마권발매나 경마산업의 재정문제, 경주마 생산 업무 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중요한 경마관련 기관으로 영국경마위원회(British Horse Racing Board)를 들 수 있다. 영국경마위원회는 1993년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단체로서 경마와 관련된 주요 행정업무, 예를 들어 경마정책의 입안, 경마산업의 재정상태 개선, 정부와의 교섭, 경마 홍보, 경마 관계자 교육, 경마시행계획 수립, 경주마 생산 장려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마권발매와 관련해서 영국경마의 특이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영국에서의 마권발매는, 우리나라와 같은 토털리제이터를 운영하여 마권을 발매하는 내무부 산하의 마권발매공사와 각 경마장의 북메이커(Bookmaker)들에 의해 수행된다.

이와 별도로 마권세부과위원회(British Horserace Betting Levy Board)라는 단체가 있어, 여기에서 마권세의 부과 및 징수, 상금과 각종 장려금 교부, 각 경마장에 대한 재정지원 및 자금대여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즉, 영국경마는 자키클럽, 영국경마위원회, 마권세부과위원회, 마권발매공사, 북메이커, 59개 경마장의 경마시행체 등 크게 6개 경마주체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경마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으로는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경마상금과 북메이커의 높은 마권발매 비율을 들 수 있다.
영국에서는 평균적으로 경주마 관리비의 약 25%만을 경마상금으로 획득할 수 있을 정도로 상금 수준이 낮아 아일랜드와 더불어 경마선진국 중 가장 상금수준이 낮은 나라로 손꼽힌다.
 
최근 20년간 영국경마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온 영국 최대의 마주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왕가의 셰이크 모하메드가 지난해 “영국의 상금 수준이 너무 낮다”며 “획기적인 상금증액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영국에서의 경주 참가를 포기하고, 영국에서 운영 중인 목장을 프랑스로 옮기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마권발매와 관련해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북메이커에 의한 마권발매 비율이 높은데, 그 비율이 거의 90%에 이를 정도다.
그런 까닭에 래드브로크(Ladbroke)와 코럴(Coral) 등 장외 북메이커 회사들의 영국경마에 대한 영향력은 막강하다.

영국의 낮은 상금수준과 북메이커의 높은 마권발매 점유율은 오랫동안 영국경마계에서 논쟁거리였고, 이 두 사실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즉, 영국에서 상금 수준이 낮은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의 마권발매를 점유하는 북메이커들에 대한 마권세 부과율이 터무니없이 낮은 데에 있다.

최근까지 북메이커에 대한 마권세 부과율은 마권세부과위원회 마권발매공사 북메이커협회 3자간의 협의를 거쳐 영국 내무부가 결정을 내렸지만, 북메이커협회의 발언권이 커서 부과율은 발매금액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93년 설립된 영국경마위원회가 북메이커에 대한 마권세 부과율 결정에 참여하면서부터 둘 사이의 갈등관계가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영국경마위원회 위원장에 새로이 선출된 피터 세빌(Mr. Peter Savill)은 낮은 경마상금이 영국경마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획기적인 상금증대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상금증대에 소요되는 재원의 대부분을 북메이커에 대한 마권세 부과율을 상향조정하여 확보하고자 하였다.

현재 북메이커들이 마권세부과위원회에 납부하고 있는 마권세는 1년에 약 5천5백만파운드 정도인데, 영국경마위원회에서는 여기에다가 8천만파운드 정도를 더 부과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게다가 경마위원회는 경마팬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까지 벌여 북메이커들이 정직하지 않고, 경마산업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당연히 북메이커협회는 즉각적으로 반발하였고, 경마위원회의 마권세 추가 부과 계획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원만히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정부(내무부)에서 중재 및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양자간의 의견차이가 너무 커서 결국 정부가 결정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