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나 서러브레드의 역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간단하게 이를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 영국 1500년대: 수말 거세의 합법화 (The age of Gelding)
 ·1700년대 서러브레드의 실질적인 3대시조 정립
 ·1748년: Godolphin Arabian의 손자 Matchem 출생
 ·1758년: Byerley Turk의 증손자 Herod의 출생
 ·1764년: Darley Arabian의 고손자 Eclipse 출생
 ·1750년: 영국 Jockey Club 설립
 ·1791년: 최초의 서러브레드 혈통서인 General Stud Book 발행

▣ 미국 ·1665년:롱아일랜드에 있는 Bona fide경마장에서 최초 경마시행
 ·1730년: Darley Arabian의 아들 씨수말  Bulle Rock 도입
 ·1740년: Godolphin Arabian의 딸 Selima 도입
 ·1750년: 미국 Jockey Club 설립

※ 이 Jockey Club은 현재의 혈통등록기관이 아닌 경마시행체이며, 미국의 초대 대통령 George Washington도 이 Jockey Club의 재결위원이었음.

·1873년: 미국 최초의 서러브레드 혈통서인 The American Stud Book 발행표에서 보듯 말에 관한 과학적 혁명이라 일컬어지는 종자개량은 150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나 실질적인 서러브레드의 역사는 약 2백50년 전인 18세기에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바로 이어서 미국에도 영국으로부터 서러브레드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혈통서 정립은 미국이 영국보다 약 80년이 뒤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서러브레드의 역사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큰 차이가 없다. 한데, 우리가 미국의 서러브레드 역사가 영국보다 훨씬 늦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 까닭은 고대로부터 경마가 시행되어 왔으나 미국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경마가 없었다는 것과  경마하면 서러브레드  라는 것을 연관지어 생각하기 때문일 듯싶다.

미국은 17세기에 경마가 도입된 이래 초기에는 영국식민지배자들에 의해 시행되다 점차 대중화하면서 1800년대에 들어 최고의 관람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미국에서 야구가 생겨난 것도 이때다.

그러나 1900년에 들어서면서 청교도의 영향과 경마와 관련한 각종 스캔들이 빈발해 1930년까지 대부분의 주에서 경마가 중단되는 ‘경마암흑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켄터키주는 말생산의 메카인 까닭에, 뉴욕주는 경마가 워낙 발전하였기 때문에, 메릴랜드주는 영국 지주들의 영향으로 경마가 계속 시행되었다.

그런데 이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에서의 경마는 주로 영국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었던 동부쪽에서 시행되었고, 앞에서 말한 3개 주가 대표적인 경마시행주였기 때문에 사실상 경마시행 및 말생산 활성화 지역은 존속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930년대 들어서 미국은 대공황을 맞게 된다.
기업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양산되고 세금이 걷히지 않아 정부재정도 허약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연방정부는 불황타개를 위한 유수정책(誘水政策 : Pump-priming Policy)의 일환으로 적자재정을 편성하고 공공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실업자를 흡수하면서 연관사업을 발전시키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 誘水政策 : 펌프로 물을 퍼올릴 때 그냥은 물이 올라오지 않고 처음에 물을 한 바가지 부어야 하듯 재정지출을 증가함으로써 민간경제활동의 활성화를 꾀하는 경기회복 정책

대 공황에 경마를 적극 권장한 미국

한편 주정부는 공공사업을 위한 재정확충 및 고용창출을 위해 경마시행을 적극 권장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경마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1960년대까지 야구와 함께 최고의 관람스포츠로서 호황을 누렸다.

미국은 경마에 관한 한 연방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을 주정부가 관장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국민들은 정부로부터는 더 많은 공공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면서 세금은 적게 내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러자 1960년대에 들어 주정부가 직접 복권발매(Lottery)를 개시함과 동시에, 그때까지만 해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만 허용되던 카지노 등을 합법화하는 주정부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아울러 2차대전 이후 TV의 보편화로 인기가 급격히 상승한 프로야구 및 미식축구 등이 경마시장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카지노가 많은 주에 널리 퍼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경마에 큰 위협은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8년 레이건 행정부가 카지노의 일종인 인디언게임을 허용하는 인디언게임법을 연방법으로 제정, 시행함으로써 경마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고 80년대 후반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 세계 최대의 경마시행국인 미국에서 경마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관람경기로서의 성격과 갬블의 성격을 동시에 함축시킨 경마를 카지노와 비교한다면 참가비용과 편의성에 있어 카지노가 우위에 있다.
참가비용면에서 직접비인 공제율(카지노에서는 House Edge)도 카지노가 낮고, 간접비인 입장료 주차료도 카지노는 무료이며(미국 경마장에서는 주차료 징수는 물론 출마표까지 판매한다), 편의성 면에서도 카지노의 경우 안락한 시설에 음료 등은 항시 무료로 제공되는 등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관람경기의 참가유인 요소는

관람경기인 프로야구 프로농구 등과 비교해보자.
관람경기의 참가유인요소를 내면적 이해관계라고 하며, 그 내용은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감정적 도박(Emotional Stake) :고교야구 혹은 프로농구 등에서 출신학교 혹은 지역연고로 인해 그 경기를 관람하고 응원하게 되는 심리.

둘째, 대상에 대한 갈망(Care Who Wins) : 박찬호가 승리투수가 되고 박세리가 우승컵을 안기를 염원하는 관심사로 TV를 시청하는 심리를 말하며, 경마에서는 자기가 건 말이나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말 혹은 기수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심리다.

그러나 불행히도 경마에서는 자기가 건 말이 이기기를 바라면서 응원하는 것 외의 다른 요소는 없으므로 미국에서도 만들어 가야 할 형편이다.
일반인들은 켄터키더비에 출주하는 유명한 말이나 보브 배퍼트 또는 게리 스티븐스 같은 몇몇 유명조교사 및 기수 외에는 잘 모른다.

켄터키더비에 출전하는 유명한 말이라 하더라도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말인지 잘 모르며, 또한 안다 하더라도 그 지역을 대표하여 출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적다.
과거의 경마는 오직 우승열패의 원칙만이 최고의 가치였고, 이 원칙 하나로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원칙은 변할 수 없고, 만약 변한다면 이것은 경마의 종언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경마는 다르다.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이벤트가 경마에 가미되지 않으면 이 또한 경마의 종언을 고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경마를 이벤트로

미국은 베팅금액이 절대 크지 않다. 1회에 통상적으로 1달러에서 5달러에 불과하며 10달러를 넘어서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배당금에 목을 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켄터키더비를 시행하는 처칠다운스 경마장도 일반 경마일에는 입장인원이 겨우 1만명, 아무리 많아도 2만명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켄터키오크스나 켄터키더비가 열리는 날에는 본장에만 15만명이 입장한다.

그것도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각처에서 입장객이 몰려든다. 그 이유는 베팅금액과 관계없이 어느 말이 이기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또한 그것이 큰 흥미거리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들어 미국에서 이 사실을 깨달아 대책수립에 부심하고 있다.

브리더스컵도 이러한 대책의 일환이다.
그것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에 NTRA(National Thoroughbred Racing Association : 전국 서러브레드 경마협회)를 창설하였다. 예를 들어 금년 6월에 프레리 매도우경마장에서 시행된 라이딩 컵 경주는 동부와 서부 대표기수끼리의 대항경주로 치러졌고, 이날 이 경마장 사상 2번째의 매출을 올리며 경마장이 꽉차는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것은 개별 경마장이 추진한 것에 불과하다.
만약 50개 주대항 대표마필경주, GI경주 우승마 대항 등등 향후 NTRA가 이를 조직적으로 추진하여 성공할 경우 미국경마는 다시 르네상스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이는 향후 세계경마의 흐름과 우리경마의 발전방향을 웅변적으로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