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가 ‘KRA’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아직은 낯설다. 돈이 오가는(경마) 구조를 갖고 있다 보니 여전히 ‘사행성 조장’ ‘복마전’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마사회(KRA)가 공모로 새 회장을 뽑았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운동권 출신의 이우재씨(68). 지난 4월 그는 취임 일성으로 부정부패 추방과 투명 경영을 선언했다. 취임 50일이 다되어가는 지난 5일 KRA 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밖에서 본 KRA와 실제 회장을 맡아 겪어본 KRA는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밖에서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부패청산, 비리근절이었는데 실제 와 보니 바깥에 알려진 것과는 차이가 좀 있어요. 하지만 이미지 개선은 시급한 문제예요. 먼저 실상을 말씀드리면 KRA의 한해 매출이 5조원 정도 됩니다. 그중 72%는 상금으로 나갑니다. 나머지 28% 중 20%는 세금입니다. 남은 8% 중 4%는 농어촌발전기금으로 나갑니다. 결국 4%의 절반 정도가 KRA의 운영자금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를 감안하지 않고 KRA가 돈을 쌓아놓고 있는 줄 알아요.”
농어촌사회연구소장을 맡아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해온 이회장은 KRA가 전혀 낯선 분야는 아니지만 회장 공모에 응하면서 공부도 꽤 했다고 털어놓았다. 시원시원한 말투가 솔직담백한 인상을 주었다.
“주위 권유도 있고 해서 응모하긴 했지만 처음엔 ‘내가 살아온 길이 있는데 이 길이 내가 갈 길인가’ 하고 생각도 많이 했지요.”
－취임때 약속한 반부패, 투명경영의 실천은 구체적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지요.
“부패청산은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취임하자마자 토론을 거쳐 전 사원이 청렴계약제 서약서를 쓰도록 했어요. 그리고 신문고 설치를 통한 외부 신고제도 활성화 및 클린카드제를 도입했습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부정부패랑 말이 안나올 겁니다.”
－경마의 사행성 조장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 같은데 어떻게 대처할 계획이신지요.
“경마 하면 도박이란 인식을 없애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사설경마’를 근절해야 합니다. 경마 하다가 패가망신했다는 경우는 대부분 사설경마에 빠진 경우입니다. 특히 사설경마의 규모는 2조원 정도 되는데 간단하게 따져서 한해 4천억원 정도의 세금이 탈루되고 있습니다. 이를 근절하여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세금을 빠뜨리지 말아야죠.”
－외국의 경우는 레저생활의 인식도 어느 정도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경마를 두고 사행성 조장 등 비난이 많은데 사실 경마는 전 세계 100여개국에서 즐기는 대중오락이자 국가산업입니다. 특히 경주마의 생산과 육성 등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합니다. 1, 2, 3차 산업이 복합된 국가산업이지요. 미국의 경우 국민총생산의 7.5%를 차지합니다. 이 정도면 영화산업의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지요. 우리나라의 경우도 ‘경마’ 하면 국민 레저생활의 중심이란 인식을 갖도록 바꾸어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요 도시에 소규모 승마장을 건설해 승마대회를 개최하고 승마 인구를 늘려나가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것과 전공인 수의학과가 잘 연결되지 않는데 수의학과를 택한 계기가 있으신지.
“농촌 운동을 하기 위해 일부러 수의학과를 지원했습니다. 독재정권 당시 수의사를 전공하면 농촌운동도 하고 밥벌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지요.”
－취임 당시부터 운동권 출신이라 말이 많았는데 경영을 잘할 자신이 있습니까.
“운동권이라는 것도 시대적 요구에 따라 역할이 달라져야지요. 지금은 민주화도 정착되었고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 좀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시대적 요구겠지요. 경쟁력, 경쟁력 하는데 그게 어느 나라 논리인지 궁금합니다. 사람 내쫓는 구조조정보다 같이 더불어 잘 사는 공존의 지혜도 배워야지요. 이 시대 운동권이 해야 할 일은 사회 곳곳에서 개혁과 혁신을 하는 것입니다.”
19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그는 농업근대화연구회, 한우물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등 사회운동으로 청춘을 보냈다. 제도권으로 들어와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운동권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 이미지로 KRA를 어느 정도 변신시킬지 두고 볼 일이다.
〈글 이동형·사진 강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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