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경마장 사람들…한줌 마권에 한숨 같은 인생을 건다
"단 한번 베팅으로 갑부가 될 수 있다"
실업의 시름이 깊어갈수록 경마장은 오히려 더욱 붐비고 있다. 과천 서울경마장의 경마일(토·일요일) 하루 평균 입장객수는 지난해 8만7천 7백여명에서 IMF 한파 이후 급격히 늘어 지난 5월에는 11만명에 육박했다.
이런 난데 없는 경마 붐은 말발굽 소리 요란한 레이스의 통쾌함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베팅의 스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마사회는 건전경마가 정착한 결과로 해석하고 싶은 눈치이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어 보인다.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로 넘쳐나는 실업자들의 발길이 '이상' 경마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경마장 입장료는 9백원. 이만한 돈으로 하루를 즐기기에는 경마장 만 한 곳이 없다. 우승 예상마에 조금씩 돈도 걸어 보고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다보면 어지간한 스트레스도 풀린다. 훌륭한 가족 오락장이 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경마장이다.
하지만 경마를 일확천금의 도박이나 업으로 삼는 순간 경마장 곳곳에 숨겨져 있는 유혹의 덫을 피하기 어렵다. 경찰과 마사회의 단속을 피해 실업자들을 울리는 경마장의 '검은 손'들이 도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7일(일요일) 오전 과천 경마장 앞길은 차와 사람으로 마치 설날이나 추석 명절 때 고속도로나 서울역 광장처럼 붐볐다.
"자! 쪽집게 경마 예상지 나왔습니다." "우승마 맞춰요∼." 지하철 4호선경마장역 입구에서는 경마 예상지 장사꾼 10여명이 떠밀린 듯 쏟아 져 나오는 경마장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35만평 경마장 전체가 거 대한 공원같은 분위기였다. 도시락 꾸러미를 든 가족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부인과 함께 한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온 이준우(33)씨는 "날씨가 너 무 좋아 소풍 기분으로 나왔다"고 했고, 일가족 4명을 거느린 40대 초 반의 이현호씨는 "서울 근교에 경마장 만한 나들이 코스가 없다"고 했 다. 화창한 날씨를 즐기는 데이트족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재미 삼아 5백원∼1천원씩 돈을 걸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마장 가는 길'은 대부분 끼리끼리 어울린 남성 들로 메워진다. 심각한 표정으로 베팅할 말을 상의하는 사람들, 뭔가에 쫓기는 듯 내내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 한눈에 실업자임을 알만한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 레이스 결과를 보고 살벌한 반응까지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에게 경마장은 나들이 장소 보다는 '도박장'에 가깝다.
경마가 도박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최근 과천 경마장에서 터진 고액 배당의 실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4월 26일 10번째 레이스에 서 12번마 블랙타이거에 4만원을 걸었다가 601.6배인 2천4백60여만원의 배당금을 받은 경우가 있었고, 일주일 전인 4월 19일에는 2명이 3만원 을 걸었다가 각각 1018.4배에 해당하는 3천50여만원씩의 거액을 챙긴 케이스가 있었다. 재수만 좋으면 적은 돈으로 일확천금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곳이 경마장이다.
◆ 경마장 앞은 연휴 고속도로 방불 비가와도 경마를 한다는 건 경마팬들에게는 기초 상식에 속한다. 경 마꾼들은 우중 경마를 "미꾸라지 잡으러 간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비오는 날이면 마사회에 "오늘 경마 하느냐"는 '상식 이하'의 문의 전화가 수없이 걸려 온다고 한다. 경마장 입장객들 중에 초보자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서울경마장 관람대 1층 안내실은 '마권 사는 법' '연승식과 복승식 의 차이' 등 경마 기초를 배우는 사람들로 전에 없이 바글바글하다. 이 뿐 아니다. 경마예상지 '정석 경마' 김원락 사장은 "요즘 사무실로 '일 자리를 잃어서 꼭 돈을 따야 하니 도와 달라'는 전화가 밀려든다"고 말 했다.
이런 'IMF 경마 붐'은 외국에까지 소개됐을 정도이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 5월 25일자 기사에서 "한국의 경마장은 IMF 이후 사람들이 더욱 몰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실직자들이 경마장에서 돈을 벌어 보겠다는 한탕주의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경찰들의 일거리도 늘어났다. 마사회 자체 청원 경찰은 물 론, 서울경마장 관할 과천경찰서는 경마일 마다 형사기동대 1백40명을 관람석에 배치해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고 있다. 과천경찰서 윤덕 모 경비과장은 "요즘 관중이 어찌나 많은지 만약 소매치기를 해도 옆 사람어깨에 부딪쳐 얼마 도망 못 가고 붙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경마장에 초보자가 늘면서 부작용도 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마 초보자를 상대로 사기를 부리며 돈을 뜯어가는 '바람잡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7일에도 서울경마장 5층에서 바람잡이 한 명이 기자에게 "경마장에 처음이냐"며 접근해 왔다. 자신을 경마장 생활 10년째인 최 모(42)라고 밝힌 이 남자는 기자를 예시장(경주 전 출주마를 관중에게 선보이는 장소)으로 데려가 좋은 말 보는 법 등을 가르쳐 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3번 기수가 말에 올라타기 전에 말의 목을 만지는 걸 보았는가. 저 것이 신호다.".
문제의 기수가 미리 조작해 놓은 승부를 자신에게 알려준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초보자가 들으면 솔깃할 만한 말이었다. 기자는 최씨의 조언에 따라 3번과 12번 말에 돈을 약간 걸었다. 경주 결과 12번이 1등, 3번이 2등으로 들어와 돈을 약간 땄다. '경마가이드'라는 그럴 듯해 보이는 명함을 내민 최씨는 "내가 돈을 벌게 해 줄 테니 다음에 꼭 나를 찾으라"고 했다.
마사회 보안부 박정재 계장은 이에 대해 "전형적인 바람잡이 수법" 이라고 설명했다. 박 계장은 "바람잡이들은 우승마를 비교적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경주를 골라 마치 자신이 정보를 빼내어 맞춘 척 하면서 초보자에게 접근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느 정도 낯이 익으면 배당액의 10∼20% 정도를 '뽀찌'라 고 하는 훈수비 조로 뜯어 내거나 사설 경마로 유인한다는 것이다. 경마 전문가들은 서울경마장에만 이런 바람잡이가 1천명 정도된다고 했 다. 이들은 대부분 경마로 신세를 망친 사람들이며, 일부는 부정 경마로 추방당한 전직 기수나 조교사도 있다고 한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막 은퇴한 기수가 현직 조교사와 기수들의 도움을 받아 바람잡이 노릇을 하기도 했다"고 경마예상지 스포츠경마 김도갑 사장은 이야기했다. 김 사장은 "이들은 법조계 전관 예우처럼 6개월∼1년 정도 도움을 받곤 했다"고 밝혔다.
일부 바람잡이들은 관람대 1층∼6층을 오르내리며 각 층마다 다른 '정보'를 퍼뜨리고 다닌다. 1층에서는 "1번, 2번이 유력마", 2층에서는 "3번, 4번이 유력마"라는 식이다. 그러면 어느 한 층에서는 대충 예상이 들어맞게 되어 있고, 결과가 나온 뒤 그 쪽에서 돈을 뜯어내는 수법이다.
대부분 경마 팬들은 많지 않은 돈으로 하루를 보내곤 한다. 서울경 마장 입장객 중 90% 정도는 하루 종일 10만원 미만을 쓰고 간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 거액을 굴리면서 경마 도박을 일삼는 '꾼'도 적지 않다.
◆ 1주일에 10% 선이자 받는 급전장사도 경마장 주변에서는 한 경주에 2천만∼3천만원씩 거는 큰 손을 '오데' 라고 부른다. 경마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데는 주로 부동산 임대업자 등 불로소득자들이며, 서울경마장에만 수 백명이 넘는다고 한다. 오데 밑으로 한 경주에 1백만∼2백만원 정도씩 거는 '잔챙이'는 수천 명에 이르며, 매주 지방에서 원정 오는 경마꾼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현재 마사회는 이런 도박성 고액 베팅을 막기 위해 마권 구입액을 1인당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마권 구입 상한 선을 비웃듯 핸드폰으로 무장하고 심부름꾼을 고용해 여러 곳의 발매소에서 마권을 한 번에 수백장씩 사들이고 있다. 마권 심부름꾼의 일당은 10만원선. 심부름꾼을 10명만 고용해도 하루 1백만원이 나가는 셈이다.
경마장 주변에는 이런 경마 도박꾼들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마 자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이다. '꽁지'라 불리는 이들은 가져온 돈을 모두 날리고도 미련을 못 버린 경마꾼들을 상대로 급전을 빌려주고 1주일에 10%씩 선이자를 받는다.
대개 자영업자 등이 2백만∼3백만원 정도를 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꽁지 아줌마'는 경마장 정문 앞에서 수표를 바꿔주는 무허가 환전 상을 가리키는 은어. 마권은 현금 구입만 가능한데, 경마장 내의 농협 출장소는 토·일요일에는 수표 조회가 힘들다는 이유로 발행 1주일 이 내의 수표만 현금으로 바꿔 준다. 따라서 경마꾼들은 꽁지 아줌마에게 10만원당 3천원씩 수수료를 내고 수표를 바꾸는 것이다.
'유진이 엄마' '삼양동 아줌마' 등 6∼7명이 경력 15년 이상씩 된 고 참으로, 이들은 보통 현금을 4천만∼5천만원씩 가지고 온다. 마사회도 이들을 잘 알아 아예 경마장 출입을 막고 있다. 경마꾼들이 타고온 승 용차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자들과 연결해 주는 것도 꽁지 아줌마들이다.
경마장 한편에서는 사설 경마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사설 경마는 경마 브로커들이 사설 마권을 만들어 팔고 경주 결과에 따라 당첨금을 배 당하는 것이다. 마사회가 아무리 애를 써도 사설 경마는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공식 경마는 배당금에서 세금과 마사회 운영비 등 28%를 떼지 만 사설 경마는 이런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밖에 둘이서 돈을 걸고 우승마를 맞추는 도박인 '맞대기'도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초보자이든 노련한 '꾼'이든 경마장에서 큰 돈을 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마꾼의 말로는 1백% 패가망신"이라고 경마예상 지 경마병법 안병순 사장은 이야기했다.
전문가들이 설명하는 이유는 이렇다. 경마는 한 번 맞으면 적어도 3배 정도의 배당금이 나오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베팅 액수를 계속 키우면 언젠가 한 번만 맞아도 이전의 손해 전체를 순식간에 만회할 수 있다. 돈을 잃을수록 점점 더 크게 베팅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경주마의 기록 등 베팅할 때 참고하는 모든 자료는 과거의 기록일 뿐, 현재의 경기 결과에는 그대로 들어맞지 않는다. 따라서 제아무리 전문가라도 다음 경기 결과를 '짐작'할 수는 있지만 '적중'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경마는 9단이나 9급이나 똑같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다.
"기댈 곳 없는 실업자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경마장에 돈을 뿌리지 만, 결과는 언제나 경마장 흙먼지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자신의 전재 산과 기업체를 경마장에서 날려 버린 한 경마꾼의 충고다.
(이동혁 주간부기자 : dong@chosun.com)
◆ 경주마의 일생 극진한 대접...각종 영양식에 전용 수영장도
98년 6월 현재 우리나라에서 경마에 출전하는 공식 경주마는 모두 1천3백60마리이다. 이중 수입 말이 1천30마리, 국산 말은 3백30마리이 다.
경주마는 무엇보다 혈통을 중시하기 때문에, 우수한 종마를 확보하는 것이 우승의 선결 조건이라고 한다. 특히 직접 씨를 내리는 씨 수말 은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씨를 받기 원하는 씨 암말이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고 차례를 기다릴 정도이다.
현재 마사회 소유의 씨수말은 22마리. 이 중 가장 유명한 말은 '라시그니'이다. 일본에서 사들이는 2천만∼3천만달러(한화 약 2백80억∼4백 20억원)짜리 씨 수말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97년 9월 미국에서 들여온 라시그니는 각종 수입 경비를 제외한 순수한 말의 '몸 값'만 89만달러 (약 12억6천만원)짜리이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경주마는 4∼5세 때가 전성기이다. 통상 경주마 는 1∼2분 내의 짧은 경주 동안 전력 질주하면 몸무게가 10㎏ 이상 준다고 한다.
따라서 보통 한 번 달리고 나면 이후 15일 동안은 쉬면서 체력을 보 충해야 한다.
경주마는 이 기간 동안 마치 임금과 같은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인삼가루, 뱀탕, 미꾸라지 등 온갖 영양식을 먹는 것은 물론, 여름에는 마방에 대형 선풍기와 경주마 전용 수영장이 마련된다.
이처럼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경주마도 늙고 쇠약해져 더이상 승리를 올리지 못하면 대부분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된다. 97년부터 올해 5월까 지 퇴역한 경주마는 모두 8백1마리. 이 중 마주가 개인 승마용으로 데려가거나 사설승마장에 팔린 것들도 있지만, 3백68마리는 말고기로 팔려나갔고, 52마리는 죽은 다음 소각 처리됐다.
◆ TV경마장 한 곳 하루 매출 4억원은 보통
흙먼지를 날리며 질주하는 경주마에 환호하고 낙담하는 풍경은 서울 경마장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마사회가 서울과 수도권에서 운영하는 지점(TV경마장) 20곳에서도 주말이면 똑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지난 6월 7일 일요일 오후 3시30분 서울 관악구 사당동 이수빌딩 서울경마장 사당지점. 가족 단위 경마 팬은 아예 없고, 대부분 30대 이상 남자인 입장객들이 눈에 불을 켠 채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TV경마장은 지난 97년 입장객 사고 이후 평당 5명선인 정원을 넘으면 철저히 출입을 통제한다. 매장 3백60평, 객장 2백50평인 사당지점은 이 날 오후 2시쯤 정원 1천1백86명이 모두 차 문을 걸었다. 그러나 빌딩밖에는 입장하지 못한 경마팬 수십여명이 혹시 중간에 나오는 사람이 있을 까 기대하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같은 풍경은 다른 TV경마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지난 1월 1일 서울경마장 입장료가 2백원에서 9백원으로 오른 뒤, 한 게임에 최소 마권구입액인 1백원 정도씩 걸면서 소일하던 노년층이 서울경마장 대신 입장료 없는 TV경마장으로 몰리면서 더욱 붐비고 있다.
그러나 IMF체제 이후 매출액은 줄어드는 추세이다. 사당 TV경마장의 하루 매출액은 지난 5월 31일 일요일의 경우 4억2천4백만원. 지난해 일일 평균 5억4천만원선에 비하면 20% 넘게 감소했다.
◆ 경마장의 FBI '경마보안부' 비리 잡으려 정보원 두고 철야 잠복 불사
경마를 둘러싼 독버섯같은 '잡음'은 아무리 근절하려 해도 뿌리 뽑히지 않는 실정이다. 지난 96년에는 전직 기수 등 경마 브로커들이 경기도 안양의 기수와 조교사 단체 숙소에 도청 장치를 설치해 경마 정보를 빼 낸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적이 있고, 92년에는 기수와 조교사, 브로커가 짜고 2년간 승부를 조작하다 검찰에 적발되자 조교사 최 모씨가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6월 15일 박 모 기수가 경마 브로커에게 돈과 향응을 받고 경마 정보를 흘려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기 도 했다.
한국마사회에는 이렇듯 계속 고개를 쳐드는 경마 비리를 잡아내기 위 한 조직이 있다. 경마보안부와 안전관리부가 이런 역할을 하는 '경마장 의 FBI'이다.
경마보안부는 주로 경마 자체에 관련된 비리를 단속한다. 소속 직원은 60명. 이 중 실제 정보 수집과 비리 추적에 나서는 계약직원 44명이 핵 심이다.
이들은 전직 경찰관, 검찰 수사관, 안기부 정보담당직원등 화려한 이력서를 자랑한다.
보안2과 박정재 조사계장은 "경마 부정을 찾아내기 위해 경마 관계자 사이에 정보원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원을 통해 '냄새'를 맡으면 보안부 직원들은 몇 달 씩 밤을 새워 가며 물증 확보에 나선다. '용의자'가 언제 누구하고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하면서 술을 마셨는지까지 잡힌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명백한 증거를 잡으면 자술서를 받고 검찰에 고발하는 것.
반면, 안전관리부는 경마꾼들이 벌이는 불법 사설 경마에 눈초리를 세 운다. 안전관리부 폐쇄회로 TV실에는 경마장 전체를 감시하는 모니터 수십개가 한 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이 모니터에 수상한 장면이 잡히면 즉시 마사회 청원 경찰에게 연락해 현장에서 덜미를 잡는다고 한다.
(김형식주간부기자 : braman@chosun.com)
◆ 실패한 사람들 "하루 최고 3억원까지 잃어 봤다" 건설업체 사장에서 경마장 수위 경마예상지 업자로 추락
'잘하면 나도 일확천금'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고 경마 도박이라는 '마약'에 빠졌다가 신세를 망친 사람은 경마장 주변에 허다하다.
경마장에서 경마로 억대 재산을 잃은 것은 얘기거리도 아니다. 그저 재산만 날리는 것뿐 아니라, 불법 경마에 빠졌다가 교도소에 들락거리고 부인과 이혼하는 등 가정이 깨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경마장 주 변에는 "원수진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으면 경마를 가르쳐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경마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경마장 주변'에서 살고 있다. 오늘도 출발 신호가 떨어 지고 불과 1∼2분 내에 승부가 갈리는 스피드의 세계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자신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
경마예상지 '정석 경마' 김원락(56)사장과 서울경마장 경비원인 이두섭(가명49)씨도 그런 사람들이다. 김씨는 대구의 한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어엿한 건설업체를 경영하던 사업가였다. 한 때 제법 큰 돈도 벌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마권에 손을 댄 것은 80년대 초 지방 공사 현장에 다니면서부터 였다.
기차 시간을 기다리다 청량리역 TV경마장에서 심심풀이로 시작한 그 는, 제법 큰 돈을 따는 일이 종종 생기면서 '판'을 키웠다. 83년 겨울 에는 공사현장에서 공사대금 3억원을 받아오다가 기차를 내리자마자 TV 경마로 몽땅 날리기도 했다. 경마에 빠져들면서 회사 일은 뒷전이 됐다. 결국 84년 회사가 부도 나면서 경마장에서도 '큰 손'에서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현재 서울경마장 근처 단칸방에서 사는 그는 못내 경마장을 떠나지 못한 채 경마예상지를 만들고 있다.
이씨 역시 한 때 남부럽지 않은 '사장님'이었다. 유신 시절 학생 운 동을 하다가 대학에서 제적당한 이씨는 80년대 초 건축업체를 차렸다. 건축 경기도 좋았고, 사업은 잘 굴러갔다. 그는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서울 요지에 집 두 채를 마련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당시 뚝섬에 있던 경마장을 찾으면서 이씨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1년 정도 경마장에 출입하면서 돈 거는 요령과 말을 보는 눈을 떴다. 그러자 돈을 딸 자신이 붙었고, 점점 거는 돈 의 단위가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내기가 자기 뜻처럼 되는 건 아니었다. 이씨 역시 하루에 당시 돈으로 1천만원이 넘는 돈을 잃기 일쑤였고, 어제 잃은 돈을 따기 위해 오늘 그 두 배를 거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자제력을 잃은 이씨에게 '바람잡이'들이 접근해 왔다. 이들은 정보를 준답시고 돈을 뜯어갔다. 그러나 그 정보도 엉터리가 다반사 였다. 그래 도 이씨는 그런 정보에 매달렸다. 딱 한 번만 이기면 모든 걸 되찾는다 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다.
"결국 직원 월급도 주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야 내가 무 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고, 결국 회사 문을 닫았습니다.".
회사가 망한 뒤 교회에 나가면서 비로소 경마 도박에서 빠져 나왔지만, 말을 보고 싶은 마음만은 가눌 길 없었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서 말을 볼 수 있는 방법이 경마장 경비원으로 취직하는 것이었다.
이씨와 김씨는 "경마장에는 영화 구경 갈 정도의 돈만 가지고 오라" 고 입을 모아 충고했다. 그래야 본전 생각을 하지 않고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쉬운 원칙을 깨닫는 데 든 비용은 그들의 인생이었다.
◆ " 경마, 이렇게 즐겨라 "하루에 두 경주만 베팅, 원금은 남겨둘 것
경마 초보자가 적은 돈으로 경마를 즐기는 방법은 없을까. 경마 전문 가들은 "1백% 돈을 따는 방법은 절대 없다"면서도 "그러나 합리적인 방 법으로 마권을 사면 적중 확률을 높일 수는 있다"고 이야기한다.
경마예상지 '경마병법' 안병순 사장은 "경마예상지를 활용하라"고 충 고했다. 현재 마사회가 경마장 안에서 팔도록 승인한 경마예상지는 17개. 서울경마장 진입로에는 이들 예상지 판매소가 길게 늘어서 있다. 전문가들이 밝히는 예상지의 적중율은 대개 30% 안팎에 지나지 않으나, 하루 12회 경주 중 2∼3회 정도는 예상지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꼽는 우승 유력마가 있다. 경마장 은어로 '데끼리'라고 하는 이런 말은 승리할 확률이 높은 반면 배당율은 낮다.
"그러나 초보자는 이런 '확실한' 말이 출전하는 2번 정도의 경주에만 돈을 거는 것이 좋다"고 안 사장은 말했다. 나머지 경주는 자신의 예상이 맞는지 경험을 쌓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이야기이다.
경마예상지 '스포츠경마' 김도갑 사장은 "만약 돈을 따면, 다음 번 마 권을 살 때에는 반드시 원금은 떼어 놓고 이전 경주에서 딴 액수만 걸라" 고 권했다. 그렇게 하면 가져간 돈을 모두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경마예상지 '정석 경마' 김원락 사장은 "해당 경주에서 경주 조건이 가장좋은 말을 고르라"고 권했다. 안쪽 주로에서 강한 말, 반대로 바깥쪽 주로에서 강한 말, 초반에 잘 뛰는 말, 후반에 속력을 내는 말 등 경 주마의 특성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자신이 마음에 품고 있는 말이 해당경주에서 유리한 주로를 배정받았는지,다른 출전마의 특성은 어떤지 등을 잘 살펴 보고 돈을 걸지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
이밖에 한국마사회는 환절기에는 계절 변화 경험이 있는 말을 택할 것, 지나치게 오래 쉬었던 말은 피할 것, 2∼3가지 마권에 분산해 돈을 걸 것 등을 권유했다.
98/06/24 주간조선
(이동혁주간부기자 : do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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