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마기수 박복규씨, 하루두끼 반그릇식사‘체중과 전쟁’
“人馬一體로 달릴 때 행복”
오늘도 출발선에 섰다.
유난히도 맑고 푸르른 과천의 가을 하늘. 관중의 기대섞인 시선이 출발선에 나란히 선 열네마리의 말과 기 수들에게 쏟아진다.
경마장에는 가벼운 흥분이 감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애마 「신통」에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오늘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에는 마음껏 달려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1착(1등)하든 꼴지하든 승부 는 다음 다음 문제, 단지 최선을 다해서 질주할 뿐. 자, 달려라!』
박복규씨(29). 한국 마사회 소속 경마 기수.
아직 20대의 젊음이지만 「늦깎이 기수」다.
경마장 밥을 10년 남짓 먹었지만 기수 경력은 채 3년도 안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기수는 아니다.
그렇지만 짧은 경력에 비해 승률이 높은 이제 막 「잘 나가는」기수다.
몸무게 49kg, 키 161cm.
왜소하지만 다부지고 탄탄한 체격.
어려서부터 합기도 쿵푸 태권도 등을 익혀서 몸놀림이 가볍고 날렵하다.
운동은 무엇이든 좋아하는 만능 스포츠맨.
그는 자신의 체격을 「경마 기수 체질」이라고 자랑한다.
경마 기수에게 가벼운 몸무게는 필수조건.
경주마가 최대한의 스피드를 내는데 장애가 되면 안되기 때문.
따라서 기수들의 체중과의 전쟁은 혹독하다.
소변의 양을 많게 조절하는 약을 복용해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도 하루 두끼만 먹고 식사 때는 밥 반그릇만 비운다.
『저는 특이한 체질이죠. 원래 적게 먹고 며칠 굶어도 허기를 느끼지 않아요. 몸무게가 늘 변함이 없죠. 결혼하면 음식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 금방 부자가 될 것 같아요. 어떤 정치인의 아들들은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기 직전에 체중을 급격이 줄여 시끄러운데 참 딱해요』
가난에 찌든 생활. 3남1녀 중 막내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음식점 종업원, 막노동 등 돈벌이가 되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했다.
우연이 알게 된 경마 기수라는 직업.
체격조건이 꼭 맞아 「바로 이거다」 싶어 시험에 응시, 재수 끝에 87년 기수 후보생으로 입사해 경마와의 평생 인연을 맺는다.
그는 기수 중에서 유일하게 현역으로 군대에 갔다 왔다.
기수 자격증을 따기 직전에 입대, 아쉬움 속에 보낸 3년.
군대에서 체격이 왜소하다고 고참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참다 못해 내무반에서 「일」을 저질렀다.
무술 시범을 보인 것.
쿵푸, 선 채로 공중 회전, 빈 맥주병 목을 맨손으로 날렸다.
젓가락을 입에 물고 물을 가득 채운 양동이를 들어 올렸다.
고참들의 입이 쫙 벌어졌다.
그 이후로는 군대 생활이 편해졌다.
제대후 마사회에 복귀, 말똥 치우고 마방(마굿간)을 청소하는 관리사로 3년을 보낸 뒤 기수 자격증을 따냈다.
기다리던 데뷔 경주.
자신만만했지만 착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말은 느림보 걸음.
「인마일체」(人馬一體)의 중요성을 비로소 깨닫고 말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마방을 찾아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서로 길들여졌다.
애마 「신통」.
호주출생 네살. 그를 만나기 전에 「신통」은 승률이 신통치 못한 비인기마였다.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배 기수가 타도 등위 안에 못들던 말.
그가 이 말을 타고 경주에 나섰을 때,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코너를 돌면서 쏜살같이 달려 우승.
말이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난 듯했다.
그 이후로 「신통」만을 탔다.
이름을 지어주고 인삼까지 삶아먹이며 「행복을 주는」 이 말과 인마일체로 달렸다.
기수는 상금으로 먹고 산다.
기본 월급은 거의 없는 편.
매주 토, 일요일에 열리는 경주와 대상경주(大賞競走)에 출전, 5등안에 들어야 상금을 탄다.
순위에 들어도 상금 액수는 큰 차이.
1등이 54%, 2등이 22%를 챙긴다.
당연히 1등을 노린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상금이 1억원 넘게 걸린 대상경주 때는 기수들의 눈빛이 다르다.
『경주 성적은 생계유지에 직결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달리죠. 승부 조작을 통한 경마 부정은 드문 일이죠』
경마는 「1분의 승부」다.
장거리 경주도 있지만 대부분은 1000-1200-1400m 레이스.
1분 남짓 시간에 우승마가 골인한다.
순간의 희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 이 순간. 순간을 의미있게 살지 못하면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 달리는 말 위에서 터득한 인생 철학입니다』
낙마(落馬).
기수들이 공포에 떠는 불청객.
과천 경마장에서 한 달에 5, 6회 경주 중 낙마 사고가 발생한다.
선수마다 1년에 한 두번은 말에서 떨어진다.
그도 3년 동안 세번 떨어졌다.
지난해에는 10일간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시련도 겪었다.
차범근감독이 축구와 가정, 신앙만 알듯이 그도 말과 약혼녀, 과천 경마장밖에 모른다.
약혼녀 박미정씨(21).
나이는 여덟살 아래지만 키는 7cm 크다. 안어울릴듯 어울리는 커플.
재주좋게 커피숍서 꼬셨단다.
『하루라도 말을 안타면 몸이 근질근질하고, 하루도 그녀를 안보면 장님이 될 것 같아요』
그의 꿈은 최고령 기수다. 프로야구 박철순선수처럼 오랫동안 현역이고 싶다.
대부분의 기수들은 체력과 체중 부담 때문에 35세 정도면 은퇴한다. 현재 최고령은 37세.
그는 앞으로 10년은 확실히 더 뛸 것이고, 20년까지도 장담한다.
20년후 그의 나이는 49세.
경마를 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않다.
「건전한 레저가 아니라 꾼들의 도박잔치」라는 인식이 아직도 강하기 때문이다.
『경마가 가족과 함께 즐기는 스포츠로 정착되고 기수들도 프로야구 스타처럼 사랑받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회색 빌딩 속에서 찌든 삶을 살다가, 맑은 공기를 가르며 말과 자연과 함께 싱그럽게 웃는 기수의 모습을 보면서 머리 속에는 한가지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가 무척이나 부럽다」.
프로필
◆ ·1968년 충북 보은 출생
◆ ·1985년 평택 신안고등학교 졸업
◆ ·1987년 한국 마사회 15기 기수 후보생 입사
◆ ·1989년 육군 입대
◆ ·1992년 마사회 관리사
◆ ·1995년 기수 면허 취득
◆ ·1995~현재 380경주 출전:35승(1착) 36승(2착)
뉴스플러스 1997.10.24 이 재 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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