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심정은 있었으나 물증이 없었던 한국마사회의 정치자금 제공이 사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인들은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의혹의 검은 비리가 전혀 근거 없는 헛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신임 마사회장이 확인해 주었다.
서생현 신임 한국마사회장은 지난 2월 1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취임 전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가진 밀담의 내용을 공개했다. 당시 광업진흥공사 사장이었던 서회장은 신임 마사회장으로 내정된 뒤 박장관과 함께 한 자리에서 "한푼도 정치자금으로 가져갈 생각 마라! (정치자금을 마사회에서) 가져간다면 나는 그날로 (마사회장을)그만 두겠다!"는 내용의 요구조건을 내걸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마사회의 개혁을 선결 업무과제로 파악한 박장관은 이를 수락한 것으로 보인다. 지속적인 정치자금의 제공을 담보로 한 마사회장의 취임은 서회장의 그간의 청렴과 강성의 이미지와는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발언의 파문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마사회 노조는 회장이 파악하고 있는 정치자금 제공내역의 공개를 요구했고 사실규명과 함께 책임소재를 따지고 들었다. 또한 이번 보도를 접한 많은 경마고객들은 서회장의 발언내용에 대해 당혹감과 함께 허탈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며 파문의 추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발언의 배경은 무엇인가? 취임 40여일 동안 경마담당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업무 미파악을 이유로 들어 줄기차게 거절해온 서회장이 조선일보의 비경마 담당기자를 선택해 가진 입장표명의 목적은, 육군 소장으로 합참 지휘통제국장과 석탄공사 감사 등의 경력에서 보듯이 보안이 몸에 밴 장성 출신 인사의 발언이었다는 점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이번 발언의 배경을 첫째, 총선을 앞둔 현 정치권의 선거자금 요구가 재개된데 대한 항의성 의사표시이거나 둘째, 이미 전 정권에서 자행된 정치자금 제공의 전모를 파악한 뒤 이를 발표하기 위한 수순으로 파악한다.
만약의 경우, 인터뷰 발언 내용이 와전되었다거나 서회장 본인도 세간의 소문 수준으로 알고 있던 정치자금문제를 박장관에게 피력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서 해명하는 해프닝을 갖는다면 이는 앞서 지적한 발언배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한국경마를 책임지는 최고 경영자의 발언으로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다.
그의 의도가 첫 번째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파문이 확대되는데 대하여 지금쯤 곤혹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번째 의도의 목적을 포기하고 제공내역의 공개를 꺼리며 사태의 조기수습을 위하여 진화에 나선다면 이는 지금껏 쌓아온 장군의 명예와 그의 청렴정신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강건함에 대한 스스로의 훼손으로 기록되어 그의 존재가치까지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정치자금 제공 내역에 대한 공개를 청구했으며, 이와는 별도로 많은 경마 고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마사회장의 후속조치를 기대한다.
2000/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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