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되었음을 알리는 국회의장의 선언은 우리의 참담한 정치 현실을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헌정사상 처음이라는 텔레비젼 앵커의 설명을 들으며 국민 모두가 공황에 빠져든 느낌이다. 우려했던 정치적 상황이 현실이 되고 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소위 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의회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어이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두 번이나 상고(商高) 출신에게 당했다"고 탄식하는 이 땅의 수구 기득 세력자들은 만세를 부르고, 당리당략에 의해 정권 찬탈의 음모를 구체화시킨 금배지들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희희낙락하겠지만, 국가와 민족을 담보로 저지른 그들의 만행은 반드시 국민적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거대 야당의 정치적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이미 밝혀졌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제3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진 민주당이,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을 보좌한 독재 수구세력인 한나라당과 야합하여 벌인 정치 자해극이었다.
대법원은 언론을 상대로 표명된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는 위법이 아니라고 판시했건만 이는 안중에도 없이 그들의 총선 전략에 따라 대통령을 살해했으며 대통령을 직접 뽑은 국민을 희롱한 것이다. 오늘의 만행은 국회의 법적 지위를 이용하여 국민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을 몰아내겠다는 쿠데타이자 내란 행위이며 초법적 의회 폭력이다.
자신들이 민의에 의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고 자부한다면 노무현 역시 국민이 직접 뽑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자기들만이 국민의 뜻을 대신한다고 믿는 저들은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지 궁금하다. 이 시간에도 국회 앞에 모여 울부짖는 국민을 보았는가? 그들의 한숨과 통곡을 들었는가? 자신을 지지하는 지역구민만 국민이고 거리에서 통분하는 국민들은 딴나라 사람들이란 말인가?
촛불을 들고 탄핵 규탄대회에 참석했거나, 소리없이 분노하는 일반 민중이거나, 통음으로 밤을 지새는 저 사람들은, 국회에 부여된 대통령 탄핵 소추 기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들이 그것을 이용할 자격을 가졌냐는 질문에 선뜻 "예"라고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노무현을 지지하지 않았거나 반대로 돌아선 사람들조차도 소추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당사자들이 그런 자격을 가졌는가에 대해서는 떳떳하게 변호할 수 없지 않은가.
노무현의 국정 운영 방식이 흡족하지 않아도 그것을 평가하고 책임을 요구하는 장본인이 지금의 야당 국회의원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차떼기로 대선 자금을 동원하고 대대손손 물려 줄 철밥통을 지역구도를 이용해서 거머쥔 배부른 돼지들이 우리의 대표라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소추안의 통과는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민심은 확실해 졌고 거대 야당의 음모를 세계 만방에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정치 개혁을 위한 항쟁의 대장정도 계속되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4년 전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의 임명을 취소하는 국민청구소송제도를 만들어서라도 감시와 비판의 눈을 부릅뜨자. 국민의 권리는 주권을 지키려는 의무를 수반해야 한다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이제는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우리를 심판하러 오실 정의(正義)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먼저 심판하자. 그들이 밥먹듯이 인용하는 국민의 힘으로 그들을 단죄(斷罪)하자.
2004 총선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생존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서가 특정 정당의 선거 전략에 이용당하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나의 호적(戶籍)이 지역 분할 구도를 획책하는 저들의 간교한 주술에 악용 당하지는 않는가를 따져보자. 그리하여 썩은 정치를 몰아내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깃발을 한반도에 뿌리내리게 하자.
오늘, 검은 금요일은 국취일로 기록되기에 충분한 날이지만 침착하자. 냉정을 되찾고 주위를 둘러보자. 내 뻗은 주먹을 사랑으로 감싸고 들이 민 칼을 관용으로 헤아리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국민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 저들의 만행이 노리는 음모 조차도 교훈으로 받아들이자.
그러기 위해서는 분노를 삭이고 승리의 방법을 바라보자. 노무현이 그 동안 교만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무시했던 실수는 없었는지 찾아보게 하자. 저들의 사악한 음모가 만 천하에 고발된 덕분에 오히려 승리자가 되었으니 승리자의 너그러움과 아량으로 적의 무리를 믿고 따랐던 민중들을 이해시키라고 요구하자. 통합의 정치를 펼쳐 소외되고 그늘진 곳을 보살피라고 권유하자.
그래도 노무현은 안 된다며 국민의 이름을 빌어 저항한다면 그것까지도 수긍하자. 다만, 그들이 오늘을 교훈 삼아 정치 개혁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에 동참하겠다면 받아들이자.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개혁될 수 있다면 저들이 이토록 업신여기는 대통령 권한쯤이야 던져주자.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이 땅에서 우리는 살아야 하고 자랑스런 이곳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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