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굽에 짓밟힌 8년 그래도 한줌 희망이…
어느 경마팬의 '이별사' 인테넛 감동물결
“어제 농협에 가서 계좌 해지를 신청한데 이어 오늘 마사회 홈페이지 회원 탈퇴 신청하고, 조금 전에 마사회 본점에 가서 전화 투표 해지 신청을 했습니다. 저의 다짐이 혹시라도 흔들릴까 봐 경마와 관련된 일체의 티끌만한 잔재도 없애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모든 흔적을 지우고자 합니다.”
8년간 3년 반 치의 연봉을 잃은 ‘한때의’ 경마팬이 한 경마 사이트에 올린 <이별사>가 요즘 경마ㆍ경륜팬들에게 찡한 감동을 주며 회자되고 있다.
ID ‘jumodest’로 40대 초반이라고 밝힌 이 팬은 경마로 피폐해진 삶을 반추하며 경마를 꺾음으로써 희망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구구절절이 표현, 경륜팬들에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경마를 하면서 진행되는 희열과 고통의 나날, 경제적인 궁핍과 압박,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부탁과 거짓말, 마누라의 눈물과 호소, 죄책감, 생활 패턴의 망가짐….”
“오늘이 아니면 경마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라는 비장한 다짐으로 시작한 ‘jumodest’는 경마로 패가망신하는 이유를 ‘본전에 대한 미련’으로 못박았다.
“내가 잃은 돈이 얼마인데 이렇게 억울하게 손을 놓을 수는 없어…, 완전히 본전은 못 챙기더라도 어느 정도의 본전만 확보하면 손을 놓을 거야…. 그런 게 8년입니다. 당연히 더 많은 부채를 떠안고 생활은 더욱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러다가는 내 인생이 내 힘으로 회복할 수 없는 파멸의 구덩이로 떨어질 것 같은 무서운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됐고…. 이젠 이 곳을 떠나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jumodest’는 경마를 접고 미련을 버리면서 대가로 얻은 것이 있다고 고백했다. 바로 새 삶에 대한 왕성한 의지와 가족에 대한 중요성의 깨달음.
“마누라에게 현재의 모든 채무 상황을 고백하고 성실하게 살 것에 대한 다짐과 결심을 했습니다. 마누라는 이해해 주었습니다. 지금 저의 마음은 한결 가볍습니다. 미련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제는 극복할 자신이 있습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는 경마에서 경험했던 쓰라린 경험과 좌절을 떠올리면서 이를 악물고 이겨낼 것입니다.”
이 글이 오르자 축복과 격려의 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당신은 3년 반 연봉을 마사회에 기부했지만 다시 생각하면 30년 연봉을 받은 것입니다. 다시는 당신의 ID를 볼 수 없기를…”, “축하합니다. 당신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당신이 일어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음먹기 나름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 바닥에서 수 억을 잃고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팬들이 부지기수다. 단경마(斷競馬)의 다짐이 굳건한 이런 글도 가끔씩 오르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해 다시 ‘판’을 찾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떠나는 ‘동료팬’에게 “축하한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는 것도 도박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다.
박수성 기자 mercury@dailysports.co.kr |
|
